[책] 원칙 by Ray Dalio

글 마지막에 인상적인 문구들을 공유하겠지만, 가장 마음을 울린 부분을 서두에 올린다. 내가 반복해서 읽기 위함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고, 의미 있는 일과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일은 아주 좋았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의미 있는 관계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한다. 내재적 가치가 없는 돈을 버는 것을 당신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돈의 가치는 무엇을 살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 하지만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진정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리고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라. 돈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지만, 유일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얻게 되면, 돈은 더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원칙”중에서

“나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약간의 시차가 있었지만, 경제는 연방준비제도의 노력에 반응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회복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경제성장이 빨라지는 동안 물가는 하락했다. 주식시장은 다시 크게 상승했고, 미국 경제는 이후 18년 동안 물가 상승을 동반하지 않은 성장을 지속했다.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마침내 나는 답을 찾았다. 채무 국가에서 흘러나온 돈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미국으로의 달러 유입은 달러 가치를 상승시켰고, 이는 다시 미국의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물가 하락 압력은 연방준비제도가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고 금리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경기 상승을 불러왔다. 은행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보호받았다. 연방준비제도가 현금을 빌려주었고, IMF와 국제결제은행 등 채권자위원회와 국제금융구조조정 기관들은 다양한 조치들을 통해 채무국들이 새로운 대출을 받아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국가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고, 여러 해에 걸쳐 채무를 탕감할 수 있었다.이 시기에 나는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예상이 완전히 틀리는 일(특히 공개적으로 틀리는 것)은 너무 창피했고, 내가 브리지워터에서 이룩한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 나는 완전히 잘못된 관점에 대해 확신을 가진 오만한 바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년 동안이나 이 분야에서 일했지만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예상이 틀린 경우보다 맞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지만, 나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어느 시기에는 너무 크게 손해를 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고, 콜맨과 나 두 사람만 남게 됐다. 결국에는 콜맨도 회사를 떠나야 했다. 콜맨의 가족이 오클라호마로 돌아갈 때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브리지워터의 직원은 나 혼자뿐이었다.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의 꿈을 잃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심지어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두 번째 차를 팔 때까지 아버지에게 4,000달러를 빌렸다.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월스트리트에 다시 취직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에 직면해 있었고, 내 선택이 나와 내 가족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칙”중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몰락시킨 실수들은 창피할 정도로 명확했다. 첫째, 나는 맹목적인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감정에 휘둘렸다. 내가 아무리 많이 알고, 아무리 열심히 연구했어도 <월스트리트 위크>TV 쇼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또다시 배웠다. 나는 TV 쇼에서 “소프트 랜딩soft landing(호황 혹은 위기 이후 경제를 부드럽게 안착시키는 것을 의미)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단정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충격적이고 곤혹스럽다.둘째, 나는 역사를 공부하는 가치를 알게 됐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은 ‘비슷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자국 통화로 표시된 부채는 정부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고, 중앙은행들이 동시에 부양정책을 실행하면(1932년 3월 대공황이 바닥을 쳤을 때 그리고 1982년에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던 것처럼)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은 서로 상쇄되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1971년과 마찬가지로 나는 역사의 교훈을 깨닫는 데 실패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나는 100년 전의 시장과 중요한 국가의 모든 움직임을 연구하고, 시간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신중하게 검증된 의사결정 원칙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셋째, 시장에 대한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알게 됐다. 시장의 균형에 대한 나의 장기 예측은 투자를 결정할 만큼 충분히 신뢰할 수 없었다. 내가 투자한 시점과 나의 예측이 실현되는 시점(만일 예측이 적중한다면) 사이에 수많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실패에 대해 반성하면서 파산하지 않고 성공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할 때 항상 드러나는 타고난 공격성을 조절하는 좋은 방법을 배우는 것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원칙”중에서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 위험한 정글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지금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머물면서 평범한 삶을 살거나, 멋진 삶을 살기 위해 밀림을 통과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모두가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종류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시간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보자.크게 실패한 이후 나는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멋진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죽지 않고 ‘어떻게 위험한 밀림을 통과할 것인가?’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몰락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들 중 하나였다. 나의 공격성을 조절하는 데 필요한 겸손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틀리는 것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을 배우게 됐고, 사고방식도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독립적인 전문가들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다른 전문가들과 신중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그들의 이론을 이해하고, 그들은 나의 이론을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우리 모두는 옳게 판단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옳은 답이 나한테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단지 정확한 답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기 위해서는 내가 극단적으로 개방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됐다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의견을 밝히지 말아야 하는 때를 알아야 한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인 원칙들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체계화하라.

큰 이익을 지키고 손실을 줄이는 방법으로 위험의 균형을 유지하라.”

“원칙”중에서

“이후 수년 동안 내가 만났던 크게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고통스러운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큰 실패를 통해 자신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교훈을 배웠다. 스티브 잡스는 1985년에 애플에서 해고당한 일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은 정말 먹기 싫은 약이었다. 하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치기도 한다. 하지만 신념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힘은 내가 한 일을 사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고, 한계를 넘게 되면 실패라는 큰 고통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이때 당신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의 고통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그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기회가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실패가 가져다주는 교훈들을 간직하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겸손함과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꾸준하게 그 방식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원칙”중에서

 

처음 ‘원칙’을 접한 건 PDF 였다. 레이달리오가 수장으로 있는 BridgeWater에 공개된 자료였다. ‘Economic Machine’ 이라는 Youtube 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접하게 된 레이달리오가 직접 쓴 자료라는 점에서 내게는 seth klarman 의 ‘Margin of Safety’ 급으로 흥분되는 자료였다. 선배거장의 생각을 직접 글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설렘이다. 원칙과 진실에 대한 관점을 많이 바꾸어줬다.

레이달리오의 이력, 같은 필드의 거장, 삶에 대한 태도, 명상가 등이 흥미로웠다.

참고로 레이달리오는, 위키 가져오면, Ray Dalio (born August 8, 1949) is an American billionaire investor, hedge fund manager, and philanthropist. Dalio is the founder of investment firm Bridgewater Associates, one of the world’s largest hedge funds. As of January 2018, he is one of the world’s 100 wealthiest people, according to bloomberg.

그러다 트윗을 통해 공식 출판 소식을 접했고 (레이달리오는 활발한 트위터리안. 가끔 링크드인을 통해 짧막한 단상을 공개하기도 하는데 재밌으니 참고해보길), 얼른 국내 번역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 풍문에 의하면 ’17년에 국내 독점 판권을 20억원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돈이 많았다면 무조건 샀다. 하나마나한 얘기).

이북을 통해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겨우 다 읽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책을 다시 회고하려다보니 생각보다 긴 작업이 될 것 같아 다시 부담이 된다. 그래도 읽기만 하고 넘기는 것보다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작.

책은 크게 3 part 로 나뉜다. 1. 저자 자신의 인생 회고 그리고 경험적으로 얻게 된 관점에 관하여 2. 삶의 원칙 3. 일의 원칙.

1. 은 12살 처음 주식을 투자했을 때부터 성공한 투자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상상하기만해도 끔찍한 실패에 대한 경험도 있었고, 자신의 일을 정말 사랑하는 청춘의 기록도 있다. 2. 이로부터 삶에 대한 원칙을 이끌어낸다. 마지막 3.일의 원칙은 아직 공감하기에는 좀 이른 부분들이 많다보니 쉽게 읽히지 않았지만, 어떻게 효율적이고 목적에 부합한 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Idea Meritocracy

철저하게 목적 지향적인 방식이고 투자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관점이다. 내가 맞는 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디어 자체의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집과 자존심 따위는 던지고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idea 자체에 대한 challenge 가 필요하다. 투자자에게 논리적이고 정확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똑똑한 동료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내가 옳다는 것을 안다” 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아는가?” 의 관점으로의 진화에 관한 얘기다. 여기서부터 인생의 원칙, 일의 원칙까지 쭉 이어진다. Bridgewater는 모든 회의과정을 녹화하고, 개인의 신뢰도를 지수화해서 아이디어 별로 weighted average 결정법을 취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칙 / 개방성 / 의지

세 가지 질문. 1)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무엇이 진실인가? 3)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1)을 얻기 위해 2)라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3)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 책과 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다. 1)이 정해졌다면 (저자는 meaningful work and meaningful relationship 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한다) 2) 진실을 얻기 위해 극도의 개방성이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위의 Idea Meritocracy 가 필요한 것. 그리고 2)의 사실을 바탕으로 1)를 얻기 위해 3)에서는 원칙이 필요하다.

삶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고 성공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더 좋은 원칙들을 확립해 나간다. 그리고 이 원칙을 저자는 공유하고 있는 것.

“나는 성공으로 가는 열쇠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잘 실패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잘 실패한다는 것은 게임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실패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함으로써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롱아일랜드 출신의 평범한 아이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체계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이 만들어낸 접근법과 원칙들이다.”

이하 마음에 드는 문구들 공유

“나는 1949년에 태어나 롱아일랜드의 중산층 동네에서 자랐다. 재즈 음악가인 아버지와 전업 주부인 어머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나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였고, 보통 학생보다 조금 나쁜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놀기 좋아했고, 거리에서 미식축구를 하고, 동네 뒤뜰에서 야구를 했다. 그리고 좀 더 자라서는 여자들을 쫓아다녔다”

“나는 보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독립적으로 사고했다. 주식시장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왔다. 또 실패보다 지루함이나 평범함을 더 두려워했다. 나는 위대한 것이 형편없는 것보다 더 좋았고, 형편없는 것이 평범한 것보다 더 좋았다. 형편없는 것은 적어도 인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나의 고등학교 앨범에 넣을 문구로 수필가 헨리 소로의 글을 골라주었다. “친구가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못하면 아마도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소리가 멀리서 들리거나, 느리더라도 그가 듣는 음악 소리에 발을 맞추어라”

“그리고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때까지 돈을 잃었다. 가격은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고, 그래서 실제 결과가 기대보다 좋을 때 가격이 상승하고, 예상보다 나쁠 때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학점도 좋았다. 독립해서 혼자 사는 것도 좋았고, 명상을 배운 것도 도움이 됐다. 1968년에 비틀스가 인도를 방문해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 아시람Ashram of Maharishi Mahesh Yogi에서 초월 명상법을 배웠을 때 나도 배워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요가를 배웠고, 좋아하게 됐다. 명상은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다. 평온하고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함으로써 더 분명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해 여름 동안 나는 과거의 통화 평가절하 사례들을 연구했다. 나는 모든 일(금과 화폐의 연동제 폐지, 달러 폭락, 주식시장의 상승)이 과거에도 일어났고, 논리적 인과관계로 볼 때 이런 일들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과거에 발생한 것이고, 이런 일이 내 인생에서 지금 갑자기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이 나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다른 시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더 많이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되고,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우리는 가격이 변동할 때마다 ‘찰칵’ 하고 소리로 알려주는 커다란 상품 거래 상황판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개장시간이 되면 시장이 1일 하한 폭인 200포인트 하락하지만, 가격은 그대로 변하지 않은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잠재적인 추가 손실이 얼마인지 확정되지 않은 채 그만큼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정말 실감 나는 경험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위험 관리의 중요성을 배우게 됐다. 그런 고통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시카고상품시장에서의 경험은 잘못된 판단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증대시켰고, 한 건의 투자나 심지어 여러 건의 투자결정이 나에게 감당할 수 있는 규모 이상의 큰 손실을 초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확실하게 가르쳐주었다. 투자는 공격적인 동시에 방어적이어야 한다. 공격적이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고, 방어적이지 않으면 돈을 지킬 수 없다. 나는 투자에서 돈을 번 사람은 누구나 어느 시점에서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투자는 전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잘못하면 전기에 감전될 수 있다. 삼겹살 선물 거래와 같은 몇몇 거래들을 통해 나는 감전의 충격과 그에 따른 공포를 경험했다.”

“선물 업무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마음에 들었지만, 시어슨의 조직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는 너무 자유분방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매우 어리석어 보이는 장난이지만, 나는 캘리포니아곡물사료연합회California Grain & Feed Association 연례 학술대회에서 강연하는 동안 스트립쇼를 하도록 했고,상사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내가 해고당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개인들과 그들의 고객 그리고 나를 해고한 사람들도 나를 좋아했고, 계속해서 내가 조언해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자문 비용을 기꺼이 지급했고, 그 결과 나는 1975년에 브리지워터Bridgewater Associates를 설립했다”

“나의 접근 방법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약 10만 달러의 손실을 초래한 ‘절대 손해 볼 수 없는’ 거래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10만 달러는 당시 내 재산의 거의 전부였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 거래가 나의 고객들에게도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속 생각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교훈은 아무것도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투자처럼 보여도 큰 손실을 안겨줄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교훈을 통해 나는 결정 방식에 대한 접근법을 바꾸었다”

“텍사스주에서 석유와 육우 산업 분야의 거물 고객이자 친구인 버드 딜라드Bud Dillard가 몇 년 전에 우리를 소개시켜주었다. 그 이후 우리는 정기적으로 경제와 시장, 특히 인플레이션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만나기 몇 주 전에 이란의 무장 단체가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습격해 52명의 시민을 인질로 붙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석유를 사려고 긴 줄을 서야 했고, 시장의 변동성은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위기감이 팽배했고,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좌절했으며 분노했다.헌트는 채무위기와 인플레이션 위험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종이돈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부를 축적하고 싶어 했다. 그는 원자재들 가운데 특히 은을 사들이고 있었다. 헌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위험회피 수단으로 1온스에 1.29달러를 주고 은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물가와 은 가격이 상승하는 와중에도 그는 은시장을 독점할 때까지 계속해서 은을 매수했다. 그 당시 은 1온스의 가격은 10달러였다. 나는 벙커에게 연방준비제도가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 수준보다 높아질 정도로 통화긴축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우리는 이것을 역수익률 곡선이라고 부른다.) 시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인플레이션 회피용 자산 가격은 떨어졌고, 경제는 침체됐다. 헌트는 석유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중동의 산유국들은 달러의 가치 하락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헌트에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위험회피 수단으로 은을 살 것이라고 말했으며, 헌트는 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해 은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은을 모두 처분했다.

1980년 초 은 가격은 50달러까지 상승했고, 헌트는 더 부자가 되었다. 나는 은 가격이 10달러로 올랐을 때 처분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50달러까지 상승하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떠났기 때문에 돈을 잃지 않았다. 모든 투자자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기회를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참담한 실패를 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때 조바심이 나게 된다. 나는 남보다 앞서 정확하게 예측하고 싶은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40달러 더 상승한 기회를 놓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1980년 3월 마침내 폭락이 시작됐고, 은 가격은 1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은 가격의 폭락으로 헌트는 파산했다. 그의 파산은 미국 경제 전체를 붕괴시킬 뻔했다.* 헌트의 파산에 따른 여파를 줄이기 위해 연방준비제도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건은 “시기가 중요하다.”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각인시켜주었다. 은시장에서 빠져나온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세계 최고의 부자가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 우리 고객 중에는 호주에서 가장 부자이자 대담한 기업가인 앨런 본드Alan Bond가 포함돼 있었다. 자수성가한 그는 아메리카 요트 대회의 132년 역사에서 미국인이 아닌 사람으로 최초로 우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벙커 헌트처럼 본드도 잘못된 투자를 했고, 결국 파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와 동료들이 성공할 때 조언을 했었고, 쇄락의 길에 있을 때도 그들과 함께했다. 그래서 그의 비극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의 실패는 기업 운영과 투기를 혼동한 전형적인 사례였고, 위험분산에 나섰지만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본드는 미국달러를 빌려 호주에서 양조장 같은 자산을 매입했다. 미국 금리가 호주 금리보다 낮았기 때문에 미국달러를 빌린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는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미국달러의 가치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 중반에 호주달러에 대한 미국달러의 가치가 상승하고, 호주에서의 맥주 판매 수익으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자 우리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나는 본드의 회사가 통화에 대한 위험을 분산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계산하고, 통화 헤지가 회사의 손실을 고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호주달러의 가치가 상승했을 때 통화를 헤지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들은 통화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고 통화를 헤지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호주달러가 최저 수준으로 폭락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비상회의를 요청했다. 엄청난 손실을 고정시키는 것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호주달러는 상승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잃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