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행피하기 기술

정말 좋은 책. 제목이 무슨 허접한 자기계발서 같이 번역되어서 아쉽지만, 내용은 정말 알차다.

찰리멍거는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몇 가지 원칙들(원리들?)에 익숙해지면, 삶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도 유용한 원칙들이 많은 듯. 소거법적 사고, 능력의 범위 등.

저자 롤프 도벨리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자.

투자 관련해서 느낀점은 내가 독서토론 시간에 질문하고 답했던 내용으로.

Q. 피터린치 ‘pessimism never pays out’ 의 업사이즈 집중 VS. ‘틀린 것을 피하면 옳은 것이 온다’ 의 다운사이드 리스크 집중 중 벨류인베스터 입장에서 종목 선정에 유한한 시간을 투입할 때 무엇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좋을까?
; 개인적으로 다음 질문과 연관지어서 하고 싶은데,
Q. 다운사이드 리스크를 피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틀린 것을 피해) 옳은 것이 올 수 있게 하는가? 거버넌스의 개입이나 외부 투자주체의 에셋 플레이 전제 없이는 틀린 것을 피하는 게 옳은 것으로 귀결되기보다 그냥 틀리지 않음으로 (주가로 치면 하방을 막는 것이 오르는 것으로 귀결되기 보다 주가가 정체되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사실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 였는데, 삶이라는 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고 투자는 안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둘의 차이는 명확한데, 행위의 능동성 측면에서 삶은 주어진 것이지만 투자는 무언가를 목표하지 않는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투자의 목표가 수익추구라면, (결국 투자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짚을 필요가 있는데, 그 목표를 버핏이 말하듯 현재 시점 대비 미래 시점의 구매력 확대라고 본다면, 우선적으로 수익률 추구가 목표가 되는 것. 개인적인 투자에서는 부자가 되는 게 목표일 것이고, 고객의 돈을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익률 창출이 될 것.)

그렇다면 삶에서는 불행을 피하는 게 의미가 있을 수 있어도,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행위에서 단순히 불행을 피한다고 해결되는가?

불행을 피한다는 게 그러니까 다운사이드 리스크를 피한다는 게 주가 상승보다는 주가 정체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딥벨류 스탁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나?

이하 마음에 든 내용 발췌 부분.

– ‘하지 않는 것, 절제하는 것’ 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니 삶에서 되도록 다운사이드 쪽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라. 현실적으로 좋은 삶을 얻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인생에서 내가 오롯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경험뿐이다. 그러므로 좋은 삶을 원한다면 경험에, 특히 행복한 경험에 더 많이 투자하라
– ‘공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연인으로 보이지만 사실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연인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세상은 당신을 최고의 연인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가장 형편없는 연인이 되고 싶은가?’ 버핏은 여기서 좋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인식 중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내부의 점수표’와 ‘외부의 점수표’를 구분하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더 중요한가, 외부 세계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낫다. 대답하려 하면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더 위에 있는 목적은 인식할 수 없다. 세계는 기본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삶의 큰 의미를 추구하는 것.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삶의 작은 의미를 묻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개인적인 목표와 야망, 사명 같은 것들이다. 개인적인 목표 없이는 좋은 삶을 살 수 없다.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정점과 종점 규칙’; 우리가 어떤 일화에서 주로 정점과 종점을 기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외 다른 것들은 기억 속에 흘러들어 가지 않는다. 특히 시간의 길이는 기억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에서 행복을 찾는 것보다 (그러니까 기억의 계좌에 추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현재 순간에 충실한 것이 낫다. 멋진 기억이 많다고 행복하거나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나 만족은 현재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체험하는 것에 집중하자. 환상적인 순간들로 이루어진 삶은 기억이 없다해도 환상적인 삶이다. 경험을 기억의 계좌에 넣는 납입금으로 여기는 걸 멈춰라. 그래 봤자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기억의 계좌도 모두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컴퓨터는 가공하지 않은 데이터를 정보의 최소 단위인 비트 형태로 저장한다. 그러나 두뇌는 날것의 데이터가 아닌, 가공된 데이터를 저장한다. 두뇌가 좋아하는 형태는 비트가 아니라 스토리다. 두뇌는 사실을 압축적이고(compact), 일관되고(consistent), 인과적인(casual) 이야기로 연결시킴으로써 기억을 만들어낸다. 이 3C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곧 이야기가 짧고, 단순하고, 구멍이 없다는 뜻이다. 세상은 꼭 어떤 이유와 결과로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이런 태도는 불행을 대할 때 특히 도움이 된다.
-자기 연민은 삶의 역경에 대한 가장 비생산적인 반응이고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냥 감정적 소용돌이일 뿐이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오래 허우적거릴수록 더 나빠지기만 한다.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빠르게 망상에 빠진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서 자기 연민의 기미가 감지되면, 곧장 이 위험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당신이 구덩이 안에 있다면, 구덩이 파는 걸 중단하라”는 모토로 말이다.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인정하고,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연민적 태도는 이 두 가지 태도 중 어떤 것에도 도움이 안 된다. 심지어 그냥 견디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결론을 내려보자. 자기 연민의 진창을 뒹굴지 않는 것은 정신건강의 중요한 규칙에 속한다.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당신의 인생이나 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운명이 내던져서 당신을 강타할 것이다. 삶은 쉽지 않다’ 라고 했다. 한 번 불행했다고, 계속 불행하게 살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지금 삶이 힘들다면 뭔가 조치를 취하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면, 그 상황을 견뎌라. 한탄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불행을 극복하는 데 도움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 연민은 원래의 불행에 더하여 스스로를 갉아먹는 불행을 추가하는 행위다. 자기연민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쾌락과 의미가 배치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좋은 삶은 의미와 즐거움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능력에 달려 있을 뿐이다.
-품위의 범위는 각각의 서약을 통합하는 것으로 이런 서약들은 세 가지 종류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준다. 1) 더 나은 논지 2) 생명의 위협 3) 악마의 계약. 1)품위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은 계몽의 정신과는 상관이 없다. 품위의 범위는 평소 내가 대변하던 명확한 사고, 이성, ‘더 나은 논지’ 의 승리 등에 배치된다.
-약속은 신성한 것이라 절대로 남발하면 안 된다 – 워렌 버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