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뉴욕여행 이런저런 생각

1. 뉴욕에 놀러 간 동안 친구가 미시건에서 뉴욕으로 날아오기로 했음. 디트로이트~JFK 왕복 1시간 30분 거리 티켓을 구입. 하지만 출발 10시간 전에 일방적 취소 통보 후 (1시간 30분 거리의 구간을) 9시간짜리 2 경유 노선으로 바꿈. 말이 안 되는 처사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특히 공항을 비롯한 미국의 공공서비스는 최악이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2.자본주의의 끝 극단은 이런 모습인가 싶은 구석이 많았다. 가격에 모든 의미가 함축된 그런.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가격과 수량이 결정되는.. 싫으면 가 라는 마인드. 마음에 안 들면, 법적으로 계약에 문제가 있으면 sue 하던가 not buy 하던가 알아서 하세요~

3.쌍방 거래에서 파생된 (억울하고 기괴할 수 있는) 문제는 (우리나라에 비해) 쉬이 무시되고, 억울한 게 있으면 형사법보다는 민법상의 소송으로 금전적 보상을 (크게) 받아가는 구조. 해당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수요에 그리고 가격에 함축된다.

‘ 이 서비스에 이 가격이 말이 되냐’ 라는 말이야말로 (미국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게, 누군가는 그 가격을 지불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런 수요만으로도 기업은 수익을 낼 수 있기에 현재 가격과 서비스가 유지되는 것이기에 저런 불평,불만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당위보다는 현상이고, 형이상학적인 뻘소리보다는 현실에 붙어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Like It!

4. 한편 양극단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근 모습을 보면, 현상보다는 당위고, 현실보다는 형이상학적 뻘소리가 많다. 계약, 이해관계, 수요와 공급보다는 감정, 민족, 국가가 우선시 되고 강력한 소셜미디어 및 인터넷 접근성을 등에 엎고 최근에는 집단주의, 민족주의 경향도 강해지는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된 스케이팅 국가대표 팀추월 경기에 관한 흥미로운 (그리고 일정 부분 나와 비슷한) 관점의 글.

http://naver.me/xlz17N1o

기본적으로 민족, 국가와 같은 나이브한 접근보다는 계약, 수요와 공급, 시장의 논리를 믿는 게 보다 합리적이고 진일보적 태도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따지지면) 우리나라의 최근 분위기는 다소 아쉽다.

민족, 한겨례, 국가에 대한 나이브한 접근은 더이상 의미를 가지기 힘들지 않을까. 계약과 수요와 공급이 인간의 다양한 군상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엮어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챙기는 사회적안정망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5. 뻘 소리 그만하고, 뉴욕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몇 개 뽑자면,

1) The Frick Collection: 대학 수업 때, 도스토프예프스키(?)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만을 다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교수님이 (취업이 된 내게) 나중에 자본가로 성공해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을 후원해달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러시아의 대부호가 개인적으로 후원한 아티스트들의 콜렉션을 보여주면서 말씀하셨는데 당시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듯 하다.

근데 이번 Frick Collection 에서 교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자본가가 (예술을 후원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움직일 때, 어떤 형태로 지역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미술품들이 한 곳에 응축되어 공개되니, 사람들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그림을 그린 가난한 예술가들은 생계를 이어나가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그런 일.

2) 뮤지컬 Hamilton: 공연을 보고 소름이 돋은 첫 작품. 알렉산더 헤밀턴이 처음 등장할 때 전율했다. 인생의 소중한 기회를 꼭 잡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쏟아 붇는 모습이 Fax Americana 의 Fathers 중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과 합쳐져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던 듯.

마냥 찬양만 하는 게 아니라, 실수로 삶이 망가지기도 하는 등 나름 인간적인 모습도 보고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어서 더욱 울림이 컸다. 연결선상에서 미투 운동으로 단 한 번에 삶이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George Washington, Lady Hamilton 의 초상화를 Frick Collection 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재밌었음.

3) 옷 가격이 충격적이었다. 미국에서 고작 몇 번 옷 사봤다고, 우리나라에서 이제 옷 못 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왜 이런 가격 차이가 발생할까?

일반적인 옷가게에서 사는 것도 매우 쌌지만, 21century 같은 대형 아울렛에서의 옷은 정말 쌌는데 유통 구조가 매우 특이한 게 아닐까 싶다. 자세하게 살펴보기는 좀 귀찮기도 하고, 내 짐작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에 유통 과정을 예측해보면, 아마 이 곳은 상표권 라이센스 계약을 하고 디자인을 직접하거나 받아온 후 공장에 생산을 위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즉, 오프라인 대형 상점을 가지고 유통만 하는 구조일 확률이 크다.

라이센싱 수수료와 위탁생산비용 그리고 임대료만 커버할 수 있는 가격 수준에서 옷 값이 형성되기에 압도적인 가격이 나온다.

비슷한 BM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국내에도 있는데, 코웰패션.

인터넷 혹은 홈쇼핑 상에서 아디다스, 리복, 퓨마 운동복은 죄다 이 회사가 판매하는 것인데 유통 구조를 요약하면,

1) 아디다스와 같은 회사와 브랜드 사용 계약을 체결한 후

2) 중국 공장에 외주 생산을 맡기고

3)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으로 옷을 뿌린다.

자체인력은 디자이너들 뿐이고, 오프라인 매장도 없기에 고정비가 상당히 낮은 구조. 기본적인 의류업 대비 ROE, OPM 이 두 배는 되고 추가 자본 납입도 필요없는 asset light하고 Cash Flow 가 좋은 사업구조. 무엇보다 핵심은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반응을 살피며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기에 재고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아마도 21century는 미국 현지 기업의 이점을 살려 코웰보다 협상 우위를 가지고 상위 브랜드들과도 로열티 계약을 해내고 있는 것 같고,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대형 매장에서 낮은 가격에 옷을 뿌리는 중일 것이다. 베르사체 셔츠가 8만원, CK 가죽 자켓이 7만원이다. 우리나라의 30% 가격…

우드버리 아울렛은 좀 더 신기한데, 브랜드별로 별도로 매장을 관리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 이 경우 21century 와 같은 모델은 아닐 확률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아울렛을 가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의 가격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으나 압도적인 수준인 건 맞는 듯.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아울렛 한 번 가봐야겠다.